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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피부라는 무대

지금까지 우리는 화학을 배웠다. 원자와 분자가 어떻게 손을 잡는지, 물이 왜 무대가 되는지, 탄소가 어떻게 긴 사슬을 만들고 작용기가 분자의 성격을 정하는지. 그 길의 끝에서 한 가지 사실이 드러난다. 화장품 성분표를 펼치면 세라마이드, 지방산, 히알루론산, 콜라겐, 펩타이드 같은 이름이 줄지어 나온다. 이 이름들은 사실 전부 “생명을 이루는 분자”의 이름이다. 화장품을 바른다는 것은, 피부를 이루는 분자를 닮은 분자를 바르는 일이다.

그래서 이제 무대를 옮긴다. 지금까지의 화학은 차갑게 멈춰 있는 시험관 속 반응이 아니었다. 그것은 살아 있는 피부 안에서 매 순간 일어나는 일의 문법이었다. 4부에서는 그 화학을 생명이라는 무대 위로 끌어올린다.

생물은 모두 세포로 이루어져 있다. 이것을 세포설이라 부른다. 세포 하나를 가동 중인 작은 공장이라고 생각하면 그림이 잡힌다. 공장에는 외벽이 있어 안과 밖을 가른다. 세포에서 그 외벽 노릇을 하는 것이 막인데, 인지질이라는 분자가 두 겹으로 늘어서 만들어진다. 인지질은 물을 좋아하는 머리와 물을 싫어하는 꼬리를 함께 가진 분자라, 물속에서 꼬리끼리 안쪽으로 모이며 저절로 이중의 벽을 세운다. 여기서 첫 번째 연결이 생긴다. 막을 이루는 인지질은 8강에서 배운 지질의 한 종류다.

벽 안에는 설비가 들어선다. 한가운데 설계도 보관실이 있어 유전정보를 담은 DNA를 지킨다. 발전소 노릇을 하는 미토콘드리아는 세포가 쓸 에너지를 만들고, 조립 라인인 리보솜은 단백질을 찍어낸다. 칸칸이 일을 나눠 맡은 이 설비들 덕분에 세포는 효율 좋은 공장이 된다.

다만 여기서 짚고 갈 것이 있다. 정작 우리가 화장품을 바르는 피부의 가장 바깥은, 살아 있는 세포가 아니다. 피부 안쪽의 세포는 위로 밀려 올라오면서 핵과 설비를 모두 버리고 납작하게 죽은 껍질이 된다. 우리가 매일 만지는 각질층은 이렇게 죽은 세포가 벽돌처럼 쌓인 층이다. 살아 있는 화학 공장은 그 벽돌담 아래에서 돌아간다. 이 벽돌과 그 사이를 메우는 것의 정체는 19강에서 따로 다룬다.

집 한 채를 짓는 데 몇 종류의 자재가 필요하듯, 생명을 짓는 데에는 네 가지 기본 재료가 든다. 탄수화물, 지질, 단백질, 핵산. 세포의 마른 무게 대부분이 이 넷으로 채워진다.

탄수화물은 연료이자 구조재다. 포도당 같은 작은 단위가 모여 에너지를 저장하는 전분이 되기도 하고, 식물의 줄기를 버티는 셀룰로스가 되기도 한다. 지질은 물에 녹지 않는 성질을 가진 무리로, 막을 만들고 에너지를 쟁여 두고 물을 밀어낸다. 말하자면 방수벽이다. 단백질은 일꾼이자 골조다. 스무 종의 아미노산이 어떻게 조합되느냐에 따라 형태도 역할도 달라지는데, 네 재료 가운데 하는 일이 가장 다양하다. 핵산은 설계도다. 무엇을 어떻게 지을지 적힌 정보를 DNA에 담아 둔다.

이 가운데 셋에는 공통의 짜임새가 있다. 작은 블록이 길게 이어 붙어 큰 분자가 되는 방식이다. 11강에서 본 고분자가 바로 이것이다. 레고 블록 하나가 단위체라면, 그것이 수없이 이어진 완성품이 중합체다. 아미노산 블록이 이어지면 단백질이 되고, 포도당 블록이 이어지면 다당류가 된다. 다만 지질은 이 틀에서 빠진다. 지질은 같은 블록이 반복해 이어 붙은 것이 아니라 다른 부품이 결합한 구조라, 레고 비유를 그대로 적용하면 어긋난다. 넷 중 하나는 예외라고 기억해 두면 된다.

4대 생체분자 4대 생체분자 — 탄수화물(설탕 블록) / 지질(방수벽, 예외 표시) / 단백질(일꾼+골조) / 핵산(설계도). 각 분자 아래 화장품 성분 예시 한 줄.

그래서, 성분표는 피부의 거울이다

섹션 제목: “그래서, 성분표는 피부의 거울이다”

이제 성분표의 익숙한 이름들이 어느 재료에 속하는지 보인다. 세라마이드, 콜레스테롤, 지방산은 지질이다. 흥미롭게도 피부의 가장 바깥 장벽을 메우는 지질은 다른 세포막과 달리 인지질이 거의 없고, 바로 이 세라마이드와 콜레스테롤과 자유 지방산 세 가지가 주축이다. 8강에서 “긴 탄화수소 꼬리에 카복실기가 달린 분자”라 배운 지방산이, 사실은 피부 장벽을 짓는 핵심 재료였던 셈이다.

히알루론산은 탄수화물 쪽이다. 두 종류의 당이 짝을 이뤄 수백, 수천 번 반복되는 천연 다당 고분자로, 11강의 고분자 개념이 그대로 살아 있는 몸 안에서 구현된 예다. 콜라겐과 케라틴, 펩타이드는 단백질이다. 콜라겐은 세 가닥이 새끼줄처럼 꼬인 구조 단백질이고, 케라틴은 표피와 각질을 이룬다.

그러니 보습제나 장벽 제품이 하는 일은 결국 피부를 이루는 분자를 닮은 분자를 보태는 것이다. 세라마이드와 콜레스테롤과 지방산을 함께 넣어 장벽의 지질 구성을 흉내 내고, 히알루론산으로 표면의 수분을 붙잡는 식이다. 다만 여기에 흔한 과장이 끼어든다. 히알루론산을 바르면 진피까지 채워진다는 말이 그렇다. 분자가 커서 각질층을 깊이 뚫고 들어가기 어려워, 바르는 제품의 작용은 대체로 표면 보습에 그친다. 주사로 넣는 필러는 이와 전혀 다른 이야기다. 콜라겐도 마찬가지다. 통째로는 분자가 너무 커서 잘 스며들지 못하고, 잘게 자른 펩타이드라 해도 바른 콜라겐이 곧 피부 콜라겐이 된다는 식의 직접적인 인과는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 핵산은 설계도일 뿐, 바르는 DNA가 유전자를 바꾼다는 주장 역시 과장에 가깝다.

피부가 죽은 벽이 아니라 끊임없이 분자를 짓고 허무는 공장이라면, 한 가지 질문이 남는다. 그 안에서 분자를 자르고 잇는 일은 누가 하는가. 답은 단백질, 그중에서도 효소다. 17강에서는 가장 다재다능한 재료인 단백질을 들여다보고, 18강에서는 그 단백질이 화학반응을 부리는 효소가 되는 이야기로 넘어간다. 피부라는 무대 위에서 화학이 어떻게 살아 움직이는지, 그 본론은 이제부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