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성성분 톺아보기 — 화장대 위 스타들을 화학으로 다시 읽기
화장대 위에는 늘 주인공으로 불리는 성분 몇 개가 있다. 레티놀은 밤에 발라야 한다고들 하고, 나이아신아마이드는 미백 성분이라 적혀 있으며, AHA와 BHA는 묵은 각질을 벗긴다고 한다. 그런데 왜 레티놀은 하필 밤일까. 나이아신아마이드는 정말 멜라닌을 지우는 걸까. 같은 산이라는 AHA와 BHA는 무엇이 다르길래 하나는 표면을, 하나는 모공을 노릴까.
이런 물음에 답하려고 새 지식을 더 끌어올 필요는 없다. 앞선 스물두 강에서 이미 배웠기 때문이다. 작용기가 분자의 성격을 정한다는 것(7강), 산은 pH에 따라 모습을 바꾼다는 것(4강), 피부 장벽이 벽돌과 시멘트로 짜여 있다는 것(19강), 산화가 분자를 망가뜨린다는 것(20강). 오늘은 이 흩어진 조각들을 한자리에 모은다. 스타 성분 세 개가 왜 그렇게 작동하는지, 배운 화학만으로 끝까지 풀어 보자.
레티놀, 두 번의 승급 시험을 치르는 분자
섹션 제목: “레티놀, 두 번의 승급 시험을 치르는 분자”레티놀은 비타민A의 한 형태다. 정확히는 알코올형 비타민A인데, 여기서 ‘알코올’은 술이 아니라 7강에서 배운 작용기 이름이다. 끝에 -올이 붙는 그 식구다. 중요한 것은 레티놀 자체로는 피부에서 별 힘을 못 쓴다는 점이다. 레티놀은 일꾼이 아니라 일꾼 후보, 곧 전구체다.
진짜 일꾼은 레티노산이다. 레티놀이 레티노산이 되려면 피부 세포 안에서 두 단계를 거쳐야 한다. 먼저 알코올형 레티놀이 알데하이드형 레티날로 바뀌고, 다시 산형 레티노산으로 바뀐다. 이 과정을 7강에서 본 적이 있다. 알코올이 산화하면 알데하이드가 되고, 알데하이드가 한 번 더 산화하면 카복실산이 된다는 그 사다리. 레티놀의 변신은 이 산화 사다리를 그대로 밟는다.
초보 운전자가 베테랑이 되는 과정에 빗댈 만하다. 레티놀은 면허는 있지만 아직 미숙한 초보다. 피부 안에서 두 번의 승급 시험(산화 두 단계)을 통과해야 비로소 능숙한 일꾼 레티노산이 된다. 이 시험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양이 떨어져 나가므로, 화장품 레티놀의 효과는 즉각적이기보다 천천히 쌓인다. 그래서 처방약으로 쓰는 레티노산(트레티노인)은 이미 베테랑이라 효과도 자극도 빠르고 센 반면, 레티놀은 그보다 순하고 느리다. 흔히 레티놀이 레티노산보다 여러 배 약하다고 말하는데, 정확한 배수는 단정하기 어렵고 방향만 기억해 두면 된다. 후보는 일꾼보다 약하다.
승급 시험을 통과한 레티노산은 세포 핵 안의 수용체에 가서 붙는다. 그러면 콜라겐을 만드는 유전자 스위치가 켜지고, 묵은 각질이 새것으로 갈리는 속도가 조절된다. 17강에서 콜라겐이 단백질이라고 배웠으니, 레티놀이 노화 관리 성분으로 불리는 이유가 여기서 이어진다.
레티놀 → 레티날 → 레티노산의 2단계 산화 사다리. 7강 ‘알코올→알데하이드→카복실산’과 나란히 배치
그렇다면 왜 밤에 바를까. 답은 빛에 있다. 레티놀 같은 비타민A 분자는 구조 안에 이중결합이 줄지어 이어진 부분이 있는데, 이 부분이 빛에 약하다. 특히 자외선을 받으면 구조가 비틀리거나 산화되면서 분해된다. 20강에서 산화가 분자를 망가뜨린다고 했던 그 일이 빛을 만나 더 빨리 일어나는 셈이다. 햇빛에 금세 녹아내리는 아이스크림을 떠올리면 된다. 그러니 빛이 없는 밤에 발라 분해를 피하고, 흡수와 전환에 쓸 시간을 버는 것이다. 갈색이나 불투명한 용기, 공기를 막는 펌프를 쓰는 것도 같은 이유다.
여기서 흔한 오해 하나를 짚자. “낮에 바르면 큰일 난다”는 말은 과장이다. 낮에 발라서 생기는 진짜 문제는 위험이 아니라 효과 손실이다. 빛에 분해되니 발라도 제 일을 못 한다는 뜻이지, 독이 된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레티놀을 쓰는 동안 피부가 예민해져 자외선에 약해질 수 있으므로, 밤에 레티놀을 바르고 낮에 자외선 차단을 챙기는 짝은 권할 만하다.
나이아신아마이드, 공장이 아니라 택배를 막는다
섹션 제목: “나이아신아마이드, 공장이 아니라 택배를 막는다”나이아신아마이드는 비타민B3의 한 형태다. 미백 성분으로 알려져 있지만, 작동 방식은 흔히 떠올리는 미백과 다르다. 보통의 미백 성분은 멜라닌을 만드는 공장을 멈춘다. 멜라닌을 찍어내는 효소(티로시나아제)의 작동을 막는 식이다. 나이아신아마이드는 그 공장에는 손대지 않는다.
대신 배송을 막는다. 피부에서 멜라닌은 멜라닌세포라는 공장에서 만들어진 뒤, 멜라노솜이라는 꾸러미에 담겨 표면의 각질세포로 전달된다. 나이아신아마이드는 이 전달 단계를 가로막는다. 공장은 돌아가지만 완성품이 매장으로 못 오는 택배 차단인 셈이다. 한 연구는 세포 실험에서 이 전달이 35~68%까지 줄었다고 보고했고(Hakozaki 등, 2002), 같은 연구는 멜라닌을 만드는 효소 자체에는 영향이 없다고 분명히 적었다. 작동하는 지점이 다르다는 말이다. 그래서 광고가 나이아신아마이드를 다른 미백 성분과 같은 원리인 양 뭉뚱그리면, 그건 정확한 설명이 아니다.
나이아신아마이드의 두 번째 일은 장벽이다. 19강에서 피부 장벽을 벽돌(각질세포)과 시멘트(세라마이드)로 그렸다. 나이아신아마이드는 이 시멘트, 곧 세라마이드를 더 만들도록 피부를 거든다(Tanno 등, 2000). 세라마이드가 늘면 벽이 촘촘해지고 수분이 덜 빠져나간다. 미백과 장벽 강화라는 두 가지가 한 분자에서 나오는 셈이다.
이쯤에서 유명한 속설을 가른다. “비타민C와 나이아신아마이드는 같이 못 쓴다”는 말이다. 이 이야기의 뿌리는 오래전 실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높은 온도에서 다룬 어떤 조건에서 나이아신아마이드가 아닌 사촌 분자(니코틴산)가 얼굴을 붉히는 반응을 일으킨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둘은 다른 분자이고, 우리가 쓰는 화장품은 상온의 완제품이라 그 조건과 거리가 멀다. 현대의 완제품에서는 함께 써도 안전하다는 것이 지금의 통설이다. 다만 둘 다 사람에 따라 자극이 될 수 있으니, 피부가 예민하다면 양과 순서를 살피는 정도면 된다.
AHA와 BHA, 물에 녹는 청소부와 기름에 녹는 청소부
섹션 제목: “AHA와 BHA, 물에 녹는 청소부와 기름에 녹는 청소부”AHA와 BHA는 둘 다 묵은 각질을 떨어뜨리는 산이다. 7강에서 배운 카복실산 작용기를 지녔다는 점에서 한 가족이다. 그런데 둘이 일하는 자리가 다르다. 그 차이는 의외로 단순한 데서 갈린다. 물에 녹느냐, 기름에 녹느냐다.
먼저 떨어뜨리는 방식부터 보자. 각질세포는 서로 단단히 붙어 있다. 세포와 세포를 이어주는 작은 접착 장치가 있는데, AHA와 BHA는 이 접착을 화학적으로 느슨하게 풀어 묵은 세포를 떨어뜨린다. 흔히 “각질을 녹인다”고 하지만, 줄로 갈아내듯 물리적으로 깎는 게 아니라 붙어 있던 손을 놓게 만드는 쪽에 가깝다.
자리가 갈리는 이유가 용해성이다. AHA(글리콜산, 젖산 등)는 물에 녹는다. 그래서 피부 표면과 각질층 위쪽에서 일한다. 반면 BHA(대표적으로 살리실산)는 기름에 녹는다. 그래서 모공을 메운 피지에 섞여 들어가 모공 속까지 닿는다. 기름이 낀 곳에는 기름에 녹는 것이 들어간다는, 말하자면 두 종류의 청소부다. 그래서 건조하고 칙칙한 표면이 고민이면 AHA를, 피지와 막힌 모공이 고민이면 BHA를 고르는 식의 짝이 자연스럽다.
피부 단면 위에 AHA(표면 각질층)와 BHA(모공·피지 속)의 작용 위치를 나란히 표시
이제 4강이 등장한다. 이 산들의 효과는 pH에 달려 있다. 산은 환경에 따라 두 모습을 오간다. 전기를 띤 해리형과, 전기를 띠지 않은 자유산형이다. 기름진 각질층을 통과해 일하는 쪽은 자유산형이다. 전기를 띤 해리형은 기름 막을 잘 못 뚫는다. 그런데 어느 쪽이 많아질지는 pH가 정한다. pH가 그 산 고유의 기준값(pKa) 근처보다 낮아질수록 자유산형이 많아진다. 산도가 충분히 낮아야 청소부가 들어갈 문이 열리는 셈이다. 글리콜산과 살리실산은 이 기준값이 대략 3 안팎이라, 제품이 약한 산성일 때 박리가 제대로 일어난다.
여기서 흔한 오해가 갈린다. “산도가 낮을수록 무조건 좋다”는 생각이다. pH를 낮추면 자유산은 늘지만 따가움과 붉어짐 같은 자극도 함께 는다. 효과와 자극이 만나는 적당한 구간이 있다는 뜻이다. 또 하나, “농도(%)만 보면 된다”는 것도 반쪽짜리다. 같은 농도라도 제품의 pH에 따라 실제로 일하는 자유산의 양이 달라진다. 숫자 하나로 효과가 정해지지 않는다. 한편 국내에서 AHA를 일정 수준 이상 넣은 제품은 자외선에 민감해질 수 있어 별도 주의 표시가 따르는데, 정확한 기준 수치는 규정 원문으로 확인하는 편이 안전하다.
그래서, 화장대 앞에서
섹션 제목: “그래서, 화장대 앞에서”이제 처음의 질문들에 화학으로 답할 수 있다.
레티놀을 밤에 바르는 건 위험해서가 아니라, 빛에 분해되는 분자라 낮에 바르면 일하기도 전에 무너지기 때문이다(광불안정). 나이아신아마이드가 미백으로 분류되는 건 멜라닌 공장을 멈춰서가 아니라, 완성된 멜라닌의 배송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그래서 효과는 한 번에 오지 않고 몇 주에 걸쳐 쌓인다. AHA와 BHA가 다른 건 알파냐 베타냐 하는 이름 한 글자가 아니라 물에 녹느냐 기름에 녹느냐이고, 그 박리가 잘되고 안되고는 제품의 pH가 가른다.
병용을 둘러싼 말들도 정리된다. 비타민C와 나이아신아마이드는 함께 써도 된다. 못 쓴다는 말은 다른 분자, 다른 조건의 이야기를 잘못 옮긴 속설이다. 레티놀과 AHA는 절대 금지는 아니지만, 둘 다 자극이 될 수 있고 산성 환경이 레티놀에 우호적이지 않을 수 있어 시간대를 나누거나 날을 걸러 쓰기를 권한다. 그리고 레티놀을 쓰는 동안 낮 자외선 차단은 빼놓지 않는 게 좋다.
스타 성분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이들이 작동하는 원리는 멀리 있지 않았다. 작용기와 산화, 산과 pH, 장벽과 단백질. 모두 앞에서 한 번씩 만난 개념들이다. 활성성분을 읽는다는 것은 그 화학을 다른 이름으로 다시 알아보는 일이었던 셈이다.
다음 회차부터는 이 성분들이 실제 제형 안에서 어떻게 자리 잡고, 어떻게 안정적으로 담기는지로 넘어간다. 좋은 성분을 고르는 일과 그 성분이 통 안에서 제 힘을 유지하는 일은 또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