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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백질과 아미노산 — 콜라겐 크림 바르면 콜라겐이 생기나?

화장품 광고에서 가장 오래, 가장 자주 등장하는 단어를 하나만 꼽으라면 콜라겐일 것이다. 탱탱한 피부, 채워지는 탄력, 잃어버린 무언가를 되돌린다는 약속. 그 약속의 뒤에는 단순한 직관이 깔려 있다. 피부의 콜라겐이 줄어드니, 콜라겐을 발라서 채우면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더할 나위 없이 자연스러운 셈법이다. 그런데 이 셈법에는 한 가지가 빠져 있다. 바른 콜라겐이 정말 피부 속으로 들어가느냐는 질문이다.

답을 먼저 말하면, 콜라겐 분자는 피부가 들여보내기에 너무 크다. 얼마나 큰지, 왜 큰 것이 문제인지를 이해하려면 단백질이라는 분자가 애초에 어떻게 생겨먹었는지부터 봐야 한다. 16강에서 우리는 단백질을 생명체를 이루는 네 가지 큰 분자 중 하나로 잠깐 만났다. 이번에는 그 단백질을 손에 들고 분해해 본다.

단백질을 한마디로 그리면, 작은 구슬을 길게 꿴 목걸이다. 여기서 구슬 하나가 아미노산이다.

아미노산은 7강에서 이미 만났다. 그때 분자의 성격을 정하는 부위를 작용기라고 불렀는데, 아미노산은 그 작용기를 두 개나 한 몸에 지닌 분자다. 한쪽 끝에는 아민기(-NH₂)가, 다른 쪽 끝에는 카복실기(-COOH)가 붙어 있다. 이 두 손이 핵심이다. 한 아미노산의 카복실기와 옆 아미노산의 아민기가 만나 악수를 하면, 그 자리에서 물 한 분자가 빠져나가면서 둘이 단단히 이어진다. 3강에서 본 물이 여기서 한 방울 떨어지는 셈이다. 이렇게 물을 내놓으며 맺어진 결합을 펩타이드 결합이라 부른다.

구슬과 구슬을 잇는 매듭이 펩타이드 결합이라고 보면 된다. 매듭을 지을 때마다 물 한 방울이 떨어지고, 구슬은 한 알씩 늘어난다. 이렇게 길게 꿰인 아미노산 사슬이 폴리펩타이드이고, 그것이 제 모양대로 접혀 입체가 되면 단백질이다. 목걸이는 그냥 늘어진 끈이 아니라, 접히고 꼬여 특정한 형태를 갖춘 끈이다.

놀라운 것은 구슬의 종류가 스무 가지밖에 안 된다는 점이다. 단 스무 종류의 아미노산을 어떤 순서로, 얼마나 길게 꿰느냐에 따라 세상의 모든 단백질이 만들어진다. 글자 수십 개로 무한한 문장을 쓰듯, 구슬 스무 알의 배열만으로 머리카락의 단백질과 눈동자의 단백질과 근육의 단백질이 다 달라진다.

펩타이드 결합 아미노산 구슬(한쪽 -NH₂, 다른 쪽 -COOH) 두 개가 만나 물 한 분자를 내놓으며 펩타이드 결합 → 길게 꿰인 폴리펩타이드 사슬 → 접힌 단백질 (이미지: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단백질은 두 가지 일을 한다. 하나는 일꾼 노릇이고, 다른 하나는 건축 자재 노릇이다. 일꾼 쪽은 다음 강에서 다룰 효소가 대표 선수이니, 여기서는 자재 쪽을 본다. 피부를 떠받치는 단백질, 곧 구조 단백질이다.

피부는 크게 바깥의 표피와 그 아래 진피로 나뉜다. 표피의 맨 바깥, 우리가 만지는 그 표면을 채우는 주된 단백질이 케라틴이다. 케라틴은 물이 함부로 드나들지 못하게 막는 방수벽이자 보호벽이다. 손톱과 머리카락도 같은 케라틴 식구다.

그 아래 진피에는 콜라겐과 엘라스틴이 있다. 콜라겐은 진피를 이루는 단백질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주인공으로, 피부에 버티는 힘과 탱탱함을 준다. 진피를 채운 건조 성분의 약 4분의 3이 콜라겐이라고 보면 어림이 맞는다. 콜라겐 한 가닥은 그냥 목걸이가 아니라, 폴리펩타이드 세 가닥을 밧줄처럼 꼬아 만든 삼중나선이다. 구슬 목걸이 세 줄을 단단히 꼰 굵은 밧줄을 떠올리면 된다. 이 밧줄이 모여 그물을 짜고, 그 그물이 피부를 안에서 받쳐 준다. 엘라스틴은 그 곁에서 늘어났다 제자리로 돌아오는 고무 같은 탄성을 맡는다.

여기서 한 가지를 분명히 짚어야 한다. 이 단백질들은 모두 피부 안에서 만들어진다. 진피에 사는 섬유아세포라는 세포가 아미노산을 가져다 직접 꿰어 콜라겐과 엘라스틴을 짓는다. 밖에서 들여오는 게 아니라 안에서 짓는 구조물이라는 것. 이 사실 하나가 다음 질문의 열쇠다.

피부 단면 구조 표피(케라틴 방수벽) / 진피(콜라겐 밧줄이 짠 그물 + 엘라스틴) / 진피 속 섬유아세포가 콜라겐을 합성하는 모습 (이미지: OpenStax, CC BY 3.0)

이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온다. 피부 콜라겐은 섬유아세포가 안에서 짓는 구조물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밖에서 콜라겐을 발랐을 때, 그게 진피까지 들어가 그 자리에 끼워질 수 있을까.

문제는 크기다. 피부의 가장 바깥에는 각질층이라는 얇은 막이 있는데, 이 막은 아무 분자나 들여보내지 않는다. 대략적인 경험칙으로, 분자량이 500달톤(Da) 이하라야 각질층을 비교적 잘 통과한다고 본다. 달톤은 분자의 무게를 재는 단위다. 각질층을 나이트클럽 입구라고 치면, 일정 덩치 이하만 들여보내는 가드가 서 있는 셈이다. 물론 이 500이라는 숫자가 칼같이 끊어지는 절대 기준은 아니다. 분자의 무게뿐 아니라 기름과 친한 정도나 생긴 모양도 통과에 관여한다. 그래도 큰 분자일수록 못 들어간다는 큰 그림은 변하지 않는다.

그럼 콜라겐은 얼마나 클까. 콜라겐 분자 하나의 무게는 대략 30만 달톤 수준이다. 입구의 한계가 약 500이니, 콜라겐은 그 한계의 600배쯤 되는 덩치다. 가드 앞에 선 600배짜리 손님. 들어갈 도리가 없다. 바른 콜라겐은 각질층을 넘지 못하고 피부 표면에 머문다.

그렇다고 아무 쓸모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안으로 못 들어가는 대신, 콜라겐은 피부 위에 얇은 막을 만들어 수분이 달아나는 것을 늦춘다. 피부에 랩을 한 겹 씌우는 것과 비슷하다. 채우는 게 아니라 덮는 것이다. 그래서 콜라겐 크림을 바르면 피부가 매끈하고 촉촉하게 느껴지는데, 그 느낌은 진짜다. 다만 그것은 진피의 콜라겐을 새로 채운 결과가 아니라 표면을 덮어 보습한 결과다. 기대했던 메커니즘과 실제 메커니즘이 다를 뿐, 사기는 아니다.

한 가지 헷갈리기 쉬운 것을 미리 잘라 두자. 여기서 말하는 콜라겐은 어디까지나 바르는 콜라겐이다. 먹는 콜라겐은 입으로 들어가 소화되는 전혀 다른 경로를 거치므로, 바르는 이야기와 섞어서는 안 된다. 이 강의 범위는 피부에 바르는 쪽까지다.

그러면 콜라겐을 잘게 잘라 작게 만들면 어떨까. 효소로 콜라겐 밧줄을 짧게 끊은 것을 가수분해 콜라겐이라 부른다. 무게가 수백에서 수천 달톤으로 줄어든, 짧은 펩타이드 조각들이다. 더 작은 아미노산은 한층 작아서 피부와도 친하다. 실제로 각질층이 스스로 수분을 붙드는 천연 보습 인자의 절반 이상이 이런 자유 아미노산이다. 그러니 작은 조각은 큰 밧줄과 같은 이야기로 묶을 수 없다.

다만 여기서도 과장은 금물이다. 일부 짧은 펩타이드가 섬유아세포에 신호를 보내 콜라겐을 더 짓게 유도한다는 가설이 있고 일부 연구가 이를 뒷받침하지만, 사람 피부에 발라서 그런 효과가 난다는 근거는 아직 제한적이고 논쟁 중이다. “가수분해 콜라겐을 바르면 콜라겐이 생긴다”고 단정할 단계는 아니라는 뜻이다. 분명한 것은 하나다. 바른다고 그게 곧장 진피의 콜라겐 자리에 끼워지는 것은 아니며, 신호를 보내 유도하는 일과 직접 채우는 일은 메커니즘이 전혀 다른 이야기라는 점이다.

이번 강에서 두 개의 길을 깔아 두었다. 하나는 단백질의 또 다른 얼굴이다. 같은 아미노산 목걸이가 구조재가 아니라 일꾼으로 접히면 효소가 된다. 묵은 각질만 골라 녹이는 그 일꾼의 정체는 18강에서 본다. 다른 하나는 크기 이야기의 뒷장이다. 큰 밧줄인 콜라겐은 문을 못 지났지만 잘게 끊은 펩타이드는 사이즈가 다르다고 했다. 그 작은 조각이 피부에서 무슨 일을 한다고 광고되는지, 어디까지가 근거 있는 이야기인지는 23강에서 펩타이드를 정면으로 다룰 때 가린다.

큰 분자는 피부를 못 넘는다는 이 단순한 사실은 콜라겐에서 끝나지 않는다. 앞으로 흡수와 전달을 다루는 회차마다 다시 등장할, 두고두고 써먹을 잣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