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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습은 한 가지 일이 아니다

겨울이면 누구나 보습제를 찾는다. 토너를 바르고, 크림을 덧바르고, 그래도 당기면 바셀린까지 꺼낸다. 그런데 이 셋이 같은 일을 한다고 생각하면 오해다. 성분표에 ‘보습’이라고 뭉뚱그려진 자리에는 사실 서로 다른 일을 맡은 세 종류의 일꾼이 섞여 있다. 물을 끌어오는 쪽, 갈라진 틈을 메우는 쪽, 그 위를 덮어 못 빠져나가게 막는 쪽. 보습은 한 동작이 아니라 이 셋의 분업이다.

이 셋을 구분할 줄 알면, 광고가 “수분 폭탄”이라 부르는 성분이 실제로 무슨 일을 하는지, 왜 어떤 보습제는 발라도 더 당기는지, 바셀린은 왜 물을 더해주지도 않으면서 보습제 취급을 받는지가 한 번에 정리된다.

첫 번째 일꾼은 물을 끌어와 붙잡는다. 물을 잘 빨아들이는 스펀지를 떠올리면 된다. 분자에 물과 손잡기 좋아하는 부위—3강에서 본 수소결합을 만드는 자리—를 여러 개 갖고 있어서, 주변의 물 분자를 당겨와 자기 옆에 붙들어 둔다. 이런 성분을 휴멕턴트(humectant)라 부른다. 글리세린, 우레아, 프로필렌글리콜이 대표적이고, 11강에서 자기 무게의 1000배 물을 머금는다고 했던 히알루론산도 보습에서 맡는 칸이 바로 여기다.

그런데 이 스펀지에는 함정이 하나 있다. 물을 어디서 끌어오느냐다. 공기가 충분히 축축하면—한 교과서적 설명으로는 습도가 대략 70% 안팎을 넘으면—공기 중의 물을 빨아들인다. 문제는 그보다 건조할 때다. 빨아들일 물이 공기에 없으면, 휴멕턴트는 더 깊은 곳, 즉 피부 속에서 물을 끌어올린다. 그렇게 표면으로 올라온 물은 마른 공기 속으로 그대로 증발해버린다. 끌어오라고 발랐는데 오히려 피부 속 물을 빼앗기는 셈이다.

습도가 높을 때는 공기에서 피부로 물이 와 촉촉하지만, 습도가 낮을 때는 피부 속 물이 표면으로 올라와 증발하는 역효과가 난다. 습도 높을 때(공기→피부, 촉촉) vs 습도 낮을 때(피부 속→표면→증발, 역효과) 화살표 비교

그래서 건조한 겨울 실내에서 휴멕턴트만 바르면 더 당길 수 있다. 이것이 휴멕턴트의 양면성이고, 그래서 이 성분은 혼자 쓰는 법이 거의 없다. 끌어온 물이 날아가지 않게 위에서 덮어주는 짝이 거의 항상 따라붙는다. 그 짝이 세 번째 일꾼이다.

두 번째 일꾼은 물을 다루지 않는다. 표면을 정돈한다. 피부 맨 바깥의 각질세포는 시간이 지나면 떨어져 나가는데, 그 과정에서 세포 사이에 미세한 틈과 갈라짐이 생긴다. 이 틈을 채워 표면을 매끄럽고 부드럽게 만드는 성분이 에몰리언트(emollient)다. 갈라진 마룻바닥 틈에 기름을 먹여 결을 메우는 일에 가깝다. 주로 기름 성분이 그 역할을 한다—시어버터, 세라마이드, 지방산, 스쿠알란, 식물성 오일.

8강에서 오일과 지방산, 왁스를 다루며 이들이 화장품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뒤에서 밝히겠다고 했다. 그 정식 직함이 바로 에몰리언트다. 기름이 피부를 보드랍게 만드는 그 느낌—사용감이라 부르는 것—의 상당 부분이 여기서 나온다.

한 가지 짚어둘 것이 있다. “오일은 곧 수분”이라는 말은 정확하지 않다. 에몰리언트의 주업은 물을 더하거나 가두는 게 아니라 틈을 메워 촉감과 결을 정돈하는 것이다. 게다가 세 칸 중 이 칸은 경계가 가장 흐릿하다. 어떤 기름 성분은 틈도 메우면서 동시에 표면에 막도 만든다. 다음에 볼 세 번째 일꾼과 역할이 겹치는 성분이 적지 않다. 성분 하나가 반드시 한 칸에만 들어가는 건 아니라는 뜻이다.

세 번째 일꾼은 막는다. 피부 표면에 기름 막을 한 겹 씌워 물이 증발하는 길을 물리적으로 끊는다. 비 오는 날 입는 우비, 혹은 음식 위에 씌우는 비닐랩을 떠올리면 된다. 우비는 물을 더 주지 않는다. 다만 안에 있는 것이 밖으로 새는 것을 막는다. 이런 성분을 오클루시브(occlusive)라 한다. 바셀린으로 알려진 페트롤라툼, 미네랄오일, 라놀린, 다이메티콘이 여기 속한다.

19강에서 각질층을 벽돌과 시멘트에 비유했다. 벽돌처럼 쌓인 각질세포와 그 사이를 메운 지질이 만드는 장벽—이 장벽을 통해 피부에서 물이 새어나가는 현상을 경피수분손실(TEWL)이라 부른다. 오클루시브는 이 장벽 위에 우비를 한 겹 더 덮어 그 손실을 줄이는 일을 한다.

덮는 힘은 성분마다 다르다. 가장 센 것은 페트롤라툼이다. 측정 조건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대표적으로 경피수분손실을 약 99%까지 막는 것으로 보고된다. 반면 한 리뷰에 따르면 미네랄오일이나 실리콘 계열은 20~30% 수준이다. ‘오클루시브’라는 한 단어로 묶여 있어도 봉인하는 힘은 같지 않다는 뜻이다.

여기서 오클루시브의 정체가 분명해진다. 이들은 물을 공급하지 않는다. 이미 있는 물을 가둘 뿐이다. 그래서 가둘 물이 없으면 소용이 없다. 바셀린을 마른 피부에 그냥 바르면 마른 상태를 봉인하는 셈이 된다. 세수 직후나 토너를 바른 뒤, 피부가 아직 젖어 있을 때 덮어야 가둘 물이 생긴다.

그래서 성분표를 세 칸으로 읽는다

섹션 제목: “그래서 성분표를 세 칸으로 읽는다”

세 일꾼을 정리하면 이렇다. 휴멕턴트는 물을 끌어오고, 에몰리언트는 틈을 메우고, 오클루시브는 그 위를 덮는다. 잘 만든 보습제는 이 셋을 한 제형에 담아 끌어오고—메우고—덮는 3단으로 일한다. 휴멕턴트가 데려온 물을 오클루시브가 가두고, 에몰리언트가 그사이 표면을 정돈하는 식이다. 앞서 휴멕턴트는 혼자 쓰지 않는다고 했던 이유가 여기서 맞아떨어진다. 끌어온 물을 덮어 가둘 짝이 있어야 비로소 끌어온 보람이 생긴다.

이제 보습제 성분표를 보면 각 성분이 어느 칸에 들어가는지 어림할 수 있다. 글리세린과 히알루론산은 끌어오는 칸, 시어버터와 세라마이드는 메우는 칸, 바셀린과 다이메티콘은 덮는 칸—다만 다이메티콘처럼 두 칸에 걸치는 성분도 있다는 것까지. 그러면 “수분 한 방울로 충전”이라는 식의 광고 문구도 다르게 읽힌다. 히알루론산은 물을 끌어오는 성분이지 그 자체가 물을 만들어내는 폭탄이 아니며, 끌어온 물을 가둬줄 무언가가 없으면 건조한 날엔 오히려 거꾸로 갈 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

이 세 칸짜리 분류는 앞으로도 계속 쓸 독해 도구다. 5부에서는 성분표의 각 칸 안으로 들어가, 그 안에 줄지어 선 개별 성분들이 광고가 약속한 만큼 실제로 일하는지 하나씩 따져본다.